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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이야기

대둔산

전북 완주의 대둔산(878m)은 전북 완주와 충남의 금산 및 논산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878m의 마천대를 비롯 사방으로 뻗은 산줄기는 기암단애와 수목이 한데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산이다.
특히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높이 81m에 폭 1m의 금강구름다리는 오금을 펴지 못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고 그 금강구름다리를 건너면 약수정이 있고 약수정에서 다시 와완바위를 가는 삼선줄다리가 있다.
이밖에도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계곡 등은 기암괴석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등산코스) 제 1코스 : 주차장→마천대→낙조대→배리재
(산행거리 약 6.6km, 소요시간 약 2시간) 제 2코스 : 하산북→안십사→주능선안부→829m봉→마천대→주차장
(산행거리 10.1km, 소요시간 : 약 6시간)

대둔산의 유래

[신증도국여지승람/500년전에 쓰여짐]에 "대둔산 고산현 북 45리(大芚山高山縣 45里]"라 쓰여있고, 300년전(1658년)에 썼다는 안심사적비에는 바위에 가로로 크게 "대둔산안심사비(大芚山安心寺碑)"라고 적혀있다.
그 아래 비문 첫줄에 "조선국 전라도 고산현 대둔산 안심사 사적비명(朝鮮國全羅道大芚山安心寺事蹟碑銘)"이라고 쓰여있다.
모두 싹나올 둔(芚)자를 써서 대둔산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둔산의 바른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은 '한듬산'이다. 이 한듬산을 漢字化한 것이 대둔산이어서 '듬'의 뜻이 들어 있지 않고 다만 '듬'과 비슷한 한자를 음화 한 것이 '둔'이므로 그 둔자가 한자로 어느자 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벌곡, 가야곡 등 일부 논산사람들은 그 쪽에서 보는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대명당자리를 계룡산에게 빼앗겨 한이 되어 '한이 든산'의 뜻으로 한듬산이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한듬산의 한을 크다는 대(大)로 하고, 듬은 그 소리만을 비슷하게 둔(芚), 혹은 둔(屯)으로 해서 대둔산(大屯山)이 된 것이다.

배티재의 진산쪽 골짜기에는 높이 14m의 임진왜란 당시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가 많은 재'의 뜻으로 한자로 이치(梨峙)로 쓰고 있다.

자연경관과 사찰.전설

대둔산의 주능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이며 하나의 산을 두고 전북과 충남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경관은 양쪽이 크게 다르다. 남쪽의 전북지역은 가파른 비탈길에 기암 괴봉이 숲처럼 서있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우며 케이블카, 상가, 철계단, 주차장 등의 시설이 잘되어 있고 교통이 편리하다.
특히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길이 50m의 높이 50m의 금강구름다리, 삼선암을 잇는 삼선구름다리, 동심바위, 금강문, 형제봉, 장군봉, 칠성봉, 용굴 등 경관이 아주 좋다. 10월 하순경에는 기암 괴봉과 파란 낙락장송, 그리고 바위와 바위사이의 단풍이 어우러지면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반면 북쪽의 충남지역은 숲이 무성하고 장중한 맛이 있으며, 수락리 군자골의 화랑폭포, 금강폭포, 비선폭포, 화랑석문, 196계단이 좋다. 태고사 위의 낙조대에서 보는 낙조는 참으로 아름답다.

대둔산 낙조대 아래 태고사(금산군 진산면)가 있고 남쪽에는 829m 암봉아래 안심사(安心寺/완주군 운주면)가 있다. 태고사는 그 절터가 좋아서 신라때 원효대사가 이 절터를 찾아내고 사흘을 춤추었다는 전설이 있고, 근세에 만해 한용운(韓龍雲)도 '태고사의 터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전설이있다. [택리지]에는 함열사람 손순복의 어머니 이야기가 있다. 그밖에 풍랑을 만난 어부의 긴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안심사에는 우의정을 지낸 김석주(金錫胄)가 글을 짓고, 이조판서를 지낸 홍계희(洪啓禧)가 썼으며, 영의정의 지낸 유척기(兪拓基)가 전서로 비석 이름 '대둔산 안심사비(大屯山 安心寺碑)가 넓은 석축위에 서있다.

임진왜란 전적지 및 전설

1592년(조선 선조 25년) 왜군이 경상도를 짓밟고 왜장 고바야가와의 2만 병력이 금산을 점령하고 나서 전라도를 침범하려던 차에 대둔산 아래 배티재에서 광주목사 권율장군이 1만5천명의 향군을 이끌고 밤에 왜군을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고 그 공으로 전라감사로 승진했고 뒤에는 도원수가 되었다.
이승리를 기리는 '원수권공이치대첩비(元帥權公梨峙大捷碑)'와 대첩사(大捷祠)를 고종때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에 세웠으나 일제대 일본인이 철거했고, 지금은 배티재 진산쪽 윗문산리 언덕에 새로운 대첩비가 세워져있다.

견훤(甄萱)이 후백제를 세우려고 용계산성(운주면 천등산 기슭)을 쌓고 적군과 싸우는데 대둔산 용굴의 용이 닭우는 소리를 내고 천등산의 신이 황한 빛을 내비쳐서 견훤이 승리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하늘의 등'이란 뜻으로 '천등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고려말에 나라를 잃은 고려유신이 딸셋을 데리고 이 산에 숨었는데, 나라를 잃은 한으로 딸셋이 흘린 눈물이 약수정(매표소 북쪽)의 샘물이 되었고, 그 딸셋은 뒤에 바위로 변해서 신선암(삼선구름다리가 놓인곳)이 되엇다는 전설이 있다.

조망과 산행길

대둔산의 바위 봉우리에 서면 계룡산, 서태산, 천태산, 민주지산, 적상산이 보이고, 향적봉에서 남덕유에 이르는 대덕유의 줄기와 삼각봉을 이루는 운장산 줄기의 조망이 좋다. 운장산 옆으로 연산산, 운암산, 만덕산, 모악산도 보이고, 칠갑산도 보인다. 금산의 진악산, 코앞의 천등산, 맑은 날에는 속리산과 서해쪽의 오서산도 볼 수 있다.
전북쪽 집단시설 지구에서 [동심바위-금강문-삼선암-마천대]길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배티재-태고사-낙조대(잘록이)-마천대길] [행정리-태고사-낙조대-마천대길] [북쪽 수락리-군자골-화랑폭포-화랑석문-196계단- 마천대]길이 있다.
마천대에서 주릉의 암릉길은 어렵기는 하나 비탈길을 가다가 올라서면 까마득한 암봉바위가 되어 조망과 남면의 기암괴봉의 숲을 내려다보는 맛은 이루헤아릴수 없다